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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스토리 요약

 

2차 세계대전 중, 나치 장교의 아들 브루노는 아버지의 발령으로 외딴 지역으로 이사한다.
그곳에서 그는 집 근처에 있는 담장과, 그 너머에서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발견한다.

 

브루노는 철조망(감옥) 너머의 소년 슈무엘과 친구가 되고,
그 관계는 놀이 없는 일상에서 유일한 위안이 된다.

 

어른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.(나치 시대)

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한 채 관계를 이어간다.

그리고 브루노는 결국, 아이의 논리로 철조망을 넘는다.

 

 

아이의 시선

 

브루노는 악의적인 인물이 아니다. 단지 아이다.

그 아이는 증오를 배우지 않았고, 차별을 인식하지도 못한다.

브루노에게 철조망은 금지의 이유가 설명되지 않은 선이고, 줄무늬 옷은 이상한 복장일 뿐이다.

 

브루노의 질문은 단순하다. “왜 저 사람들은 저기 있어?”

그러나 이 질문은 끝까지 답을 얻지 못한다.

어른들은 보호를 이유로 침묵하고, 그 침묵은 브루노를 가장 위험한 곳으로 밀어 넣는다.

 

브루노가 철조망을 넘는 선택은 용기도, 반항도 아니다.
그저 설명받지 못한 아이가 할 수 있는 행동이다.

친구가 있고, 약속이 있고, 도와야 할 일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.

이 순간, 아이의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.

 

철조망 안의 소년 슈무엘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. 아니, 설명하지 못한다.

슈무엘은 울지 않고, 호소하지 않는다.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.

이 침묵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.

고통이 설명되지 않을 때, 순수함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다가간다.

두 아이의 우정은 세계를 바꾸지 않는다.
하지만 그 우정은, 이 세계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가장 또렷하게 드러낸다.

 

 

뒤바뀐 입장

 

아버지는 더 이상 지휘관이 아니다. 어머니는 더 이상 침묵 속의 방관자가 아니다.

그들이 믿어왔던 질서, 그들이 눈감아왔던 구조는 아이 하나를 집어삼킨 뒤에야 문제로 인식된다.

 

이 영화의 가장 잔인한 점은 여기 있다.

수많은 아이들이 사라질 때는 그것이 ‘임무’였고, ‘시스템’이었지만

단 한 명, 내 아이가 사라지자 그제서야 지옥으로 인식한다.

입장이 바뀌지 않으면, 이해도 오지 않는다.

 

 

 

마무리

 

전쟁도, 이념도, 차별도 아이들의 결정이 아니다.

설명되지 않은 세계에서 아이들은 순수함으로 다가갔지만, 그 결과는 현실의 잔인함이었다.

현실의 잔인함은 아이들의 순수함을 고려하지 않는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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